감치는 향, 길게 오래 남아- 양하대곡(洋河大曲)
양하대곡 주, 술 빛깔이 투명하며 지극히 깨끗하며, 향이 순수하면서도 진합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은 선명하면서도 짙으며, 순하다. 비단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단맛이 감치고, 온화합니다.
여운의 맛은 상쾌하며, 입안에서 감치는 향이 길게 오래 남습니다. 이로써, 농향형(濃香型) 대곡주(大曲酒)가 가져야 하는 ‘색(色), 향(香), 선(鮮), 농(濃), 순(醇)’ 등 다섯 가지의 독특한 품격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양하대곡 주는 강소성(江蘇省, 주: 중국 동부 해안 쪽의 省, 북으로는 산동성, 남으로는 절강성, 서로는 안휘성을 접한다. 남경이 省都이며, 면적은 남한과 비슷.) 사양현(泗陽縣) 양하진(洋河鎭)에서 생산되는데,
지역 명칭에서 술 이름이 비롯됐습니다. 양하진은 중국 역사상 유명한, 주요 진(鎭)인 바, 동한(東漢, 서기 25년-220년)시대 이래 군사상 거점으로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역대의 군사 전략가들이 말한, 황회지간(黃淮之間)에 군사의 요처인 백양관(白洋關)이 있다고 말한 바로 그곳 입니다.
양하진의 지리적 위치는 고황하(古黃河, 주: 황하의 지류)와 회하(淮河, 주: 하남 桐柏山에서 발원하여 강소의 洪澤湖로 흘러들었다가 양자강으로 합류하는 전장 1천 킬로미터의 강)의 중간이며,
북으로는 낙마호(落馬湖)에 임하고, 남으로는 홍택호에 기대고 있습니다. 남북 대운하(주: 隨代부터 양자-황하를 이어온 운하)와도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따라서 수륙교통이 크게 발달한 곳이기에 상업적 번영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으며, 당대(唐代)에 이미 양조장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고적들을 조사해 본 바로는, 명 나라 시대 때 이미 아홉 개 성(省)의 사람들이 이곳에다 회관들을 건립했는데 이들 회관은 모두 대 상인들이 출자를 해서 세운 것들이었습니다.
상업거래와 주업(酒業) 경영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바, 전해내려오길, 전성기에 양하진의 양조장(釀酒作坊)이 15가(家)에 달했다고 합니다. 각지로부터 술 빚는 전문가(釀酒師)들이 이곳에 몰려들었으며,
이로써 좋은 술이 빚어지고 서로 술의 아름다움을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명조(明朝)의 시인 쪼우지(鄒緝)는 ‘백양하(白洋河)’란 시를 읊었는데, 시에서 이르기를,
백양하 아래 봄물이 푸른데
白洋河下春水碧
백양하 가운데 술 사러 온 이들 북적이네
白洋河中多沽客
봄 바람 부는 2월, 버들가지 새로 푸르지만
春風二月柳條新
집 그리운 나그네는 천 리를 떨어져 있도다.
却念行人千里隔
‘고객(沽客)’은 술을 사는 상인을 말하는데, 이들은 멀리 천 리 밖에서 온 이들이다. 양하진의 술 산업이 당시에 얼마나 융성했는가를 짐작케 해줍니다.
청대(淸代) 이후, 양하진의 아름다운 술은 드넓은 지역의 인민 대중들에게 기쁨을 주면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술 향기를 맡고 말에서 내리며, 맛을 알고는 수레를 세운다”는 말과 같은 영예의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청대 초기에 백(白)씨 성을 가진 산서성(山西省) 상인 하나가 양하진에 당도했습니다. 그는 이곳의 샘물이 달고 순하며, 부근의 토질이 비옥하고, 수수가 실하고 풍부함을 보곤 술을 빚기에
참으로 좋은 땅임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산서성으로부터 이름 있는 양조 전문가를 초빙하여 양하진에다 양조장을 차렸습니다. 만들어진 술이 나오고 보니 과연 종전 것보다 더욱 향과 단맛이 좋고, 순한 맛이며 부드러운 맛도 나았습니다.
이로써 양하대곡 주의 이름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강희(康熙) 연간에 기록 편집된 『강희자전(康熙字典)』에는 벌써 “양하대곡은 강소백양하에서 생산 된다. (洋河大曲産于江蘇白洋河)”라고 기재돼 있으며,
양하대곡은 3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명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희 황제는 다섯 번이나 남순(南巡, 주: 황하 이남 지역을 순시한 일)을 한 일이 있는데, 두 차례나 양하에서 행차를 멈추고 “술 맛을 보았다(知味)”.
그 뒤, <숙천현지(宿遷縣志)>의 기록에 따르면 청나라 건륭(乾隆) 황제(弘歷)가 두 번째 강 남쪽 지방을 시찰할 때, 천조하(遷皂河)의 새로 수리된 행궁(行宮)에서 7일간을 머물렀습니다.
천하의 좋은 술은 다 마셔본 황제가 양하대곡을 마신 뒤에 친히 붓을 들어 “양하대곡주, 맛과 향기가 순하니 진실로 아름다운 술이라(洋河大曲酒 味香醇 眞佳酒也)”라는 찬사를 적었습니다.
봉건사회에 있어서 제왕의 품제(品題)를 얻었으니, 양하대곡주는 즉시로 백 배의 몸값을 올릴 수밖에없었습니다.
20세기 초, 양하대곡은 다시 진일보의 발전을 가졌습니다. 1915년에 있은 전국명주전람회(주: 전국주류평가회가 아님)에서 일등상을 획득했으며, 같은 해, 파나마 국제박람회에 참가하여
최우수 품질상(金質獎)을 받았습니다. 1923년, 남양국제명주대회에서 또 ‘국제명주(國際名酒)’의 칭호를 얻음으로써 세계적인 영예를 누렸습니다.
양하대곡 주는 정선된 최고급의 강소성 특산의 수수를 원료로 합니다. 보리와 밀, 그리고 완두를 재료로 해서 높은 온도에서 누룩을 만들어 당화발효제로 씁니다.
양하진의 이름높은 ‘미인천(美人泉)’에서 길러진 맑고 깨끗한 샘물을 사용하는데 이 물은 지극히 청결하며 순수한 단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의 성질은 부드럽고 우수하여 술을 빚는데 아주 적합합니다.
그밖에,양하지역의 토질은 살빛 같은 홍색(肉紅色)을 띠는 점토인데, 이런 토질을 술의 발효 구덩이를 만드는 데 이용하면 술을 걸러 증류를 하는 과정에
향기와 단맛을 돌출시켜 술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하는데 이바지합니다.
오랜 시간을 거쳐오면서, 양하대곡은 뭇사람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으며 영예로운 명성을 누려왔습니다. 사람들이 이 술을 찬양하기를,
술 향기에 이끌려 가던 말을 멈추고
聞香下馬
술 맛을 보고자 수레를 세운다네,
知味停車
좋은 술맛 하늘에 솟구치니
酒味沖天
나는 새도 바람결에 그 향기를 마신다네
飛鳥聞香化風
술지게미 강에 흘러 드니
糟粕入水
노닐던 물고기 그 맛을 얻어 용이 됐다네,
遊魚得味成龍
양하에서 빚어진 빼어난 술
福泉酒海淸香美
사람 입맛 붙잡기로는 강남에서 제일이라네.
味占江南第一家
양하대곡은 1979년, 1984년, 1988년에 있은 제3회, 제4회, 제5회 전국주류평가회에서 ‘전국명주(全國名酒)로 선정되었습니다.